아버지 #01 영어 실력보다 태도와 성실성이 더 중요하다
조금은 창피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우리 아버지는 영어 단어를 아마 50개 정도만 아시는 것 같다. Ok, Sorry, Good, Bye, No Good.이런 기본적인 단어 몇 마디로 아버지는 지난 40년의 미국 생활을 버텨 오셨다. 아버지(현재 만 88세)가 거주하고 계신 버지니아주 Fairfax 카운티는지금은 규모가 꽤 큰 한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어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필요하면…
영어 발음이 아직도 어려운 나
미국에 와서 처음 들어간 고등학교 수업의 대부분은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이었다.정식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수학(Algebra)과 체육(Physical Education), 딱 두 과목뿐이었다. 어느 날 영어 단어 시험이 있었다.총 20개의 단어 중에서,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10개의 단어를 듣고 받아쓰는 시험이었다. 나는 그 20개 단어를 모두 외웠고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
1986년 늦가을이었다.쌀쌀한 날씨 속에서 축구 경기를 하던 중,상대 선수가 공을 가로채려다축구화로 내 왼쪽 다리를 살짝(???) 건드렸다. 경기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이 뛰고 있는데왼쪽 다리에서무언가 젖어드는 느낌이 들었다.잠시 멈춰 왼쪽 다리를 보니…오 마이 갓. 왼쪽 다리 정강이 위 피부가푹 파인 채로 약 2인치 정도 찢어져 있었다.이상하게도 피는 거의 흐르지 않았고,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맑은 물 같은 것만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연방정부 학자금 지원(FAFSA) 서류가 있다는 사실을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알았다
나는 미국와서, 고등학교 11학년부터, 주말마다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 일을 했다.12학년 때는 아버지의 운전면허가 정지(Suspended)되어내가 아침 일찍 아버지를 공사 현장에 모셔다 드리고 학교에 갔고,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공사 현장으로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아쉬움이 더 컸다.11학년 때는 가을에는 축구, 겨울에는 레슬링, 봄에는 야구를 했지만12학년부터는 운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포기했던 나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는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그 당시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조차 귀찮았고, 영어 공부가 재미가 없었다. 중학교 때 영어 시험 문제가 아직도 기억난다.시험 문제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No Parking의 뜻은 무엇인가?” 영어 공부는 포기했지만, 그래도 park라는 단어가 ‘공원’이라는 뜻과 명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수업 시간에 동사에 -ing가 붙으면 현재진행형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그래서 그…
40년 전, 나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던 순간의 기억
1985년 11월 20일, 대학입학학력고사가 실시되던 날이었다.나는 대구공항에서 인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우리 가족의 미국 이민은 작은아버지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작은아버지는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 버지니아주 Falls Church에 거주하고 계셨다.1979년, 작은아버지께서 형제 가족을 대상으로 미국 이민 초청 서류를 신청하셨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85년에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