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10: 할아버지의 마지막 날

할아버지는 본인이 키가 작으신 것을 많이 싫어하셨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늘 신신당부를 하셨다.

“네 아내는 무조건 너보다 키가 커야 한다.”
여자를 만날 때는 이것저것 보기 전에 무조건 키부터 먼저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윤씨 집안의 씨앗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행히 나는 나보다 키가 큰 여자를 만났고, 할아버지께 소개해 드릴 수 있었다.
그때가 2001년 가을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연세가 많으셨고 기억력도 많이 쇠퇴하신 상태였다.
말씀은 못 하셨지만, 눈빛만으로도 크게 만족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 모두 만족해하셨고, 그 덕분에 결혼 준비는 쉽게 진행되었다.

2002년의 따뜻한 봄날이었다.
나는 결혼 준비를 겸해 여자친구와 뉴욕에 다녀온 뒤, 밤늦게 내가 살던 아파트에 도착했다.
주말이라서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무음으로 해 둔 휴대전화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전화를 드리자 아버지는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신 아버지를 대신해, 나는 오래전에 할아버지를 위해 General Power of Attorney를 준비해 두었다.
그 서류 덕분에 할아버지와 관련된 대부분의 결정을 내가 대신할 수 있었다.
(참고로 Power of Attorney의 효력과 범위는 주 정부마다 다르다. 오래전에 나는 할아버지께서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버지니아주 General Power of Attorney를 준비해 두었다.)

할아버지는 병실 침대에 누워 계셨고, 산소 마스크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여러 개의 튜브가 팔에 연결되어 있었다.
병실에는 큰집 식구, 작은 아버지, 부모님이 모두 와 계셨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할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의식은 없고,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약으로 혈압을 유지하고 있지만, 상태는 매우 위중하다고 했다.
내가 원한다면 약을 계속 투입해 혈압을 유지하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셨다.

서류상으로는 할아버지를 위한 General Power of Attorney를 준비해 두었지만, 정작 이런 상황에 대해 할아버지와 미리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어떤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으신지에 대해서도 내게 말씀해 주신 적이 없었다.
(참고로, 버지니아주에서는 의료 치료에 대한 결정은 General Power of Attorney가 아니라 Advance Medical Directive나 Medical Power of Attorney에 따른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의료 결정 서류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가족 친지 모두가 나의 결정에 따르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우리 가족 모두의 합의를 존중해 주셨다.)

나는 먼저 의사 선생님께 할아버지께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진통제나 모르핀 등이 충분히 투여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현재 충분한 모르핀이 투여되고 있어 통증이나 고통은 느끼지 않으실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의사 선생님께 지금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주입되고 있는 약을 중단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약 주입이 중단되면 할아버지께서 2~4시간 이내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내가 충분히 이해 했다고 말씀드리고, 의사에게 치료 중단을 부탁 드렸다.

가족 친지 모두에게 나의 결정을 설명했고, 우리는 함께 할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지키기로 했다.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하던 그날 오후, 할아버지의 혈압을 표시하던 기계의 숫자는 점점 내려갔고, 심장 박동을 보여주던 모니터는 어느 순간 flat line을 그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날,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나에게 내 신부감의 조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맞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해 주신 적이 없었다.

나는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그날 내가 내린 결정이 할아버지께서도 원하셨을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은 열여덟, 스무 살이 되어 나보다 훨씬 키가 커진 두 증손자를 내려다보며, 윤 씨 집안의 씨앗을 바꾸는 데 성공한 나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실 것이라 믿는다.


Note: This article is intended for informational purposes only and does not constitute tax advice. For personalized guidance, please consult a tax professional.
참고: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세무 상담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세무 관련 사항은 반드시 자격을 갖춘 세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