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12 – 아버지의 흑역사 1 (운전면허 정지)
모든 사람에게는 흑역사의 순간이 있다.
우리 아버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7년 5월에 일어났다.
아버지는 운전면허 정지를 받았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버지니아 Falls Church에 살고 있었다.
Fairfax County 바로 옆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다.
그 시절 Falls Church의 도로 제한 속도는 25마일이었다.
참고로 Falls Church 시는 최근 주거 지역 도로의 제한 속도를 시속 20마일로 낮추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건설 현장으로 출근하셨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시려고 늘 35~40마일 정도로 운전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속도위반 티켓을 자주 받으셨다.
처음에는 티켓을 받으면 벌금만 내면 되는 줄 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속도위반이 계속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 포인트가 너무 많이 쌓였고,
결국 운전면허가 정지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아버지에게는 대신 운전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당시 나는 17살이었다.
나는 바로 Learner’s Permit을 받고, 야간 운전면허 교육을 신청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내가 픽업트럭을 운전하면서 아버지와 출퇴근을 함께 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같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새벽에 나가서 하루 종일 현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런데 가을이 다가오면 고등학교 축구 시즌이 시작된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부터 축구팀은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해야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시작된 뒤에도, 나는 아침 일찍 아버지를 공사 현장에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공사 현장으로 가서 아버지 일을 조금 도와드린 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했던 축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가장 아쉬운 일이 있다면, 축구를 하지 못했던 그 여름과 가을이었다.
미국 생활 초기는 누구에게나 실수와 좌절, 슬픔과 억울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그런 일들을 그냥 덤덤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딴 생각을 할 에너지도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이 생기면 그 일만 해결하고 또 다음 날을 그냥 살았다.
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이 많아서였을까.
우리 가족은 오히려 작은 일 하나에도 행복을 느꼈다.
어느 토요일, 아버지와 나는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집 근처 맥도널드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매장 안에 엄마와 여동생이 앉아 있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잠시나마 힘든 미국 생활을 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 가족에게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맥도널드에서 가족이 같이 함께 식사를 하는 그 짧은 시간이
그 당시 우리에게는 “엄청난 행복”이었다.
그날 가족이 함께 식사한 맥도널드는
우리에게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쉼터였다.

Note: This article is intended for informational purposes only and does not constitute tax advice. For personalized guidance, please consult a tax professional.
참고: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세무 상담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세무 관련 사항은 반드시 자격을 갖춘 세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