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2 –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포기했던 나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는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
그 당시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조차 귀찮았고, 영어 공부가 재미가 없었다.

중학교 때 영어 시험 문제가 아직도 기억난다.
시험 문제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No Parking의 뜻은 무엇인가?”

영어 공부는 포기했지만, 그래도 park라는
단어가 ‘공원’이라는 뜻과 명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동사에 -ing가 붙으면 현재진행형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 문제를 보며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명사에도 -ing가 붙을 수 있나?’

그 순간,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No 공원-ing…?
그렇다면 공원 출입 금지???

나는 ‘공원 출입 금지’를 답으로 찍었다.

그런 영포자가, 고등학교 2학년을 거의 마칠 즈음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될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미국에 가기 전, 성문기본영어 책 한 권을 샀다.
늦었지만 영어 공부를 시작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영어를 그렇게도 재미없어하던 내가
그 책을 끝까지 읽을 리가 없었다.
처음 몇 페이지만 넘기고는
그 책으로 하는 영어 공부도 곧 포기했다.

그렇다면 나는 영어를 어떻게 배웠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서라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과 나를 둘러싼 환경 덕분에
어느 순간 영어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주변 환경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버지니아주 Falls Church시에 있는 George Mason High School이었다.
1985년 당시, 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월남계와 필리핀계 아시안 학생이 8명 정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말로 물어볼 사람은 사촌형이 있었지만,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

학교 등록 당시,
12월 초에 11학년(한국 고2)으로 등록하면
곧바로 대학 입학 원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10학년부터 다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내 생일이 빨라서 한국에서 1년 일찍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했던 터라,
10학년부터 다시 시작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은 말 그대로 벙어리 장님 같은 시간이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냥 눈치만 보며 대강 맞춰가며 학교생활을 했다.

1년쯤 지나자
어느 순간 귀가 조금씩 뚫리기 시작했고,
영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선생님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머릿속에 있는 답을 영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미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거의 마치고
미국에 와서 10학년을 다시 시작하다 보니,
실제로 고등학교 공부 내용은
미국 역사와 정부 수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영어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들을 때는
그냥 바보처럼 앉아 수업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제대로 말하고 싶어졌다.

영어로 말을 하려고
머릿속에서 문법을 생각하고 단어를 고르다 보면
이미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를 깨달았다.

수업 중에 질문을 받으면 동사, 부사, 형용사를 다 빼고,  내가 아는 영어 명사만으로 거의 답을 했다.

신기하게도 선생님과 미국 친구들은 내 말을 대부분 이해했다.

시험에서 
“모래 속에 섞인 금속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가?”라는 
주관식 문제가 나왔을 때,
나는 답을 글 대신 그림으로 그렸다.

모래 더미를 그리고,
그 안에 금속 가루를 조금 더 진한 색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자석 막대기를 그린 뒤,
자석에 금속 가루가 붙어 있는 장면을 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라도 실수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창피한 일도 정말 많았다.

고등학교 축구부에 가입한 뒤,
선수들이 단체로 학교에 방문한
적십자 헌혈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 한 명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불러냈다.

미국에 온 지 몇 년 되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1년 정도 되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지도를 보여주었다.
일본은 녹색으로,
중국·한국·동남아시아 국가는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국가 출신은
미국에 최소 3년 또는 5년 이상 거주해야
헌혈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미국 친구들은 모두 헌혈을 했지만,
그날 나는 헌혈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한국·중국·동남아시아 지역은
B형 간염 보유율이 매우 높았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미국 생활이 40년을 넘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쉽지 않다.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고,
대화 중에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돌이켜보면
내 영어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던 시기는
미국 회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직장에서는
영어를 하고 싶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다.

미국 직장 동료들이
내 서툰 발음을 끝까지 들어주고
기다려 주었던 인내와 배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영어 공부는
책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서툰 영어 실력이었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힘든 영어를 한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환경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Note: This article is intended for informational purposes only and does not constitute tax advice. For personalized guidance, please consult a tax professional.
참고: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세무 상담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세무 관련 사항은 반드시 자격을 갖춘 세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